
바람이 자꾸 불어 가장자리로 밀려난다고 생각했다. 바람도 밉고 나도 미웠다.
헌데 생각해 보니, 바람이야 원래 부는 것이고 내가 있는 곳이라면야 어디든 가장자리 아닌 나의 중심인가 싶다. 그래서 이제는 바람도 나도 밉지가 않다.
괜찮은 것 같다.
안녕히 앨범 소개
연극·영화·전통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프로듀서 및 피아니스트로 활동 중인 황경은님의 앨범 발매 세션에는 다른 밴드에서 함께 작업 중인 김진규씨의 소개를 통해 참여하게 되었다. 스스로의 삶을 이야기하는 가사가 제일 먼저 귀에 들어왔고, 또한 단순하고 매력적인 멜로디를 점차 발전시켜 장대한 느낌을 만들어내는 곡의 흐름이 대단히 멋지다고 느꼈다.
1. 끝나지 않는 시간 속으로
끝이라는 게 너무 커 보여서 그 전의 시간을 헤아리지 못했네
이 곡이 드럼 연주를 만들기에 제일 어려운 곡이었다. 팝 발라드 정도의 템포이지만 단순히 팝으로 연주하기에는 말이 안 될 만큼 가사나 곡의 분위기에 신비로움과 깊이가 느껴졌다. 작곡가 황경은님으로부터 몇 가지 레퍼런스가 제시되었고, 백비트-쿵빡이 명백히 드러나기보다는 재즈를 연주하듯 느슨한 느낌으로 시작하고, 후반부에는 경은님의 미친듯한 피아노 솔로를 받쳐주기 위해 거친 느낌으로 연주하되 역시나 쿵빡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 패턴으로 만들어보았다. 합주 내내 이래저래 여러 가지로 시도하다 점차 '이거다'싶은 패턴이 나오기 시작하였고, 경은님이 맘에 들어 하여 다행이었다.
이 앨범에서 드럼 세트가 연주되는 곡이 3곡인데, 3곡 다 스네어를 달리하여 사운드를 각기 다르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이 곡의 경우, 작게 치는 부분과 크게 치는 부분의 다이내믹의 폭이 대단히 크고, 또한 후반부에는 헤비메탈에 가까운 기타와 피아노 소리를 뚫고 스네어가 딱딱 꽂히게 들려야 했기 때문에 옛날 빈티지 스네어의 섬세함을 지니는 동시에 6.5인치의 깊이로 볼륨 또한 확실하게 뿜어내주는 캐노푸스 메이플 스네어를 사용하였다.

처음엔 보컬과 피아노 솔로를 반주하는 방향으로 편곡되었지만 이후 시작된 레코딩에서는 경은님의 제안으로 밴드 전체가 혼돈의 시간을 표현하듯 프리재즈에 가까운 느낌의 엔딩이 추가되었고, 또한 드럼 디렉터로서 참가한 김진규 씨의 몇 가지 제안으로 드럼의 다이내믹이 굉장한 스케일을 갖게 되었다. 덕분에 곡의 후반부에는 '보컬을 반주하는 세션인데 이렇게 드럼을 때려대도 되나?' 싶을 정도로 격한 연주가 최종 테이크로 발매되었는데, 개인적으로는 대단히 흥미로운 연주였다.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이 주어진다면 더 난폭해지고 싶다.
2. 여명
잠들라 어리고 슬픈 마음이여
그대 태양이 산맥을 넘는다
잠들라 여리고 지친 마음이여
그대 별자리 하늘에 오른다
한여름이 저물고 나서도 우리는 숲으로 가리
이 곡은 드럼세트가 아닌 카혼과 젬베 및 셰이커를 비롯한 작은 타악기들로 연주되었다. 곡의 초반에는 고요한 느낌을, 후반부에는 '숲으로 가리'라는 가사 그대로 숲속에서 둘러앉아 노래하고 연주하는 느낌을 주문받았고, 그에 따라 처음부터 후렴구까지는 카혼으로 리듬을 연주하였고, 후렴이 끝나고 이어지는 아웃트로에서는 젬베, 셰이커, 탬버린 등 여러 악기가 추가되는 걸로 흐름을 만들어봤다.

카혼을 라이브에서 드럼 대신 연주하기나 했지 음원 발매를 위해 스튜디오에서 제대로 녹음해보기는 거의 처음이었는데, 홀과 때리는 면에 다이내믹 마이크 하나씩, 오버헤드에 콘덴서 마이크 두 개, 이렇게 총 4개의 트랙을 받았다.
녹음 당시 카혼과 스플래시 심벌을 함께 연주하려 했는데 레코딩엔지니어인 브레드형이 따로따로 녹음하자 제안하여 그대로 연주하였다. 이후 녹음된 타악기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노래가 나오는 동안에는 심벌이 거의 안 나오면 좋겠다'라는 경은님의 주문이 있었는데, 카혼과 심벌을 따로 녹음하지 않았으면 그 주문대로 편집하기엔 일이 많이 복잡해질 뻔했다. 브레드형 덕분에 참 다행이었다.
아웃트로의 젬베는 김진규 씨가 연주하였고 이후 내가 젬베 솔로 파트를 경은님의 피아노 솔로와 대화하듯 편집하였다. 원래 난 이렇게 컴퓨터로 드럼이나 타악기 만지는 걸 참 어려워하는데 이상하게도 이번 편집에서는 진규가 쳐놓은 걸 미디처럼 음 하나하나씩 분리하여 아예 새로운 릭을 만들기도 하고, 재밌게 잘 마쳤다.

편집의 흔적들
下 편으로 이어집니다.

심히 연출된 합주 모습